9.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 인상 깊었던 구절들.
"그래...... 여자가 한 명 있었어, 뉴옥에. 내가 사랑했지. 백인이었어. 머리카락은 검고 눈동자는 초록색이었어. 목소리는 뭐랄까, 바람이 만들어내는 맑은 풍경 소리 같았지. 한 1년쯤 만났어. 주말마다 거의. 때로는 그애 아파트에서 보고, 또 때로는 내 아파트에서 보고. 어떻게 하면 두 사람만의 세상에 빠져드는지 너도 알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두 사람만의 따뜻한 세상. 두 사람만의 언어. 두 사람만의 습관. 그랬지."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 아버지의 육체가 시들고, 희망이 부서지고, 얼굴에 슬픔과 회한의 굵은 주름이 잡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평생 동안 인생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하신 분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주말이라 해도 그저 집 주변만 어슬렁 거리셨죠. 그리고 친구분들이 오면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곤 하셨어요.
"담대하게 희망을 품으십시오! 설령 돈이 없어서 물건 값을 제때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희망을 품으십시오! 저 역시 모든 것이 절망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단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전적인 관계일까? 아니면 사회적인 관계, 즉 자식을 기르고 노동을 분담하기 위한 최적의 경제 단위일까? 아니면 공통의 기억을 가진 집단일까? 아니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범위일까? 아니면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
"캐냐 사람들 가운데서 사파리 여행을 할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니? 농사짓는 데 써도 모자랄 땅을 외국 관광객들을 위해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뭐니? 백인들은 흑인 아이 백 명보다 죽은 코끼리 한 마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정말 웃기지 않니?"
가난이라는 관념, 다시 말해서 새로운 욕구와 필요성은 마치 전염병처럼 나에 의해서, 아우마에 의해서, 유수프 삼촌의 라디오에 의해서 이곳까지 전파되었다. 가난은 한낱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가난이 실제 현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 가난을 하소연하며 구걸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과 다르게 실내 화장실을 가지고 있고 날마다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것은 앨트겔드의 어린이들이 멋진 자동차와 텔레비전에서 쏟아지는 풍성하고 화려한 온갖 상품들을 무시할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자기가 보기에 옳은 일을 함으로써 동포들에게 봉사 하는 거야. 안 그래?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바라는 걸 한다고 해서 봉사가 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우리 큰형은, 네 아버지는 말이야, 자기가 독립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 술자리에서 일찍 일어나면 사람들이 뒤에서 쑤군거릴까봐 그게 두려워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했던 거야. 그러니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겠어.
물고기가 있다고 쳐. 이 물고기는 새처럼 하늘을 날려고 하지 않아. 다른 물고기와 함께 헤엄을 치지.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 알아. 만일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내가 살아온 삶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아마 내가 느끼는 감정에만 충실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빠져들 거야. 하지만 내가 자란 세상은 그렇지가 않았어. 나는 내가 보고 자란 것들만 알 뿐이야. 내가 보지 못한 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뿐이란 말이다.
법은 한 국가가 양심을 둘러싸고 벌이는 길고 긴 대화이기도 하다.
한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대화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대면에서는 글에 비해 솔직함을 드러내기 꺼려하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적인 접촉이 가지는 매력은 대화를 통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그 사람의 가치관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글을 통해 오바마를 만났다. ‘흑인’이라는 사실, 그것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로만 건조하게 느꼈던 오바마를 ‘질척’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에 대해 들었다. 하와이에서의 경험, 인도네시아에서의 성장,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방황을 하는 모습, 또 시카고에서 공동체 운동을 하는 모습, 케냐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또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오바마.
그는 지도자로서 갖춰야할 경험들을 했음에 분명했다. 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을 했고 이를 이겨나갔으며, 다른 나라, 다른 인종의 고민에 대한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했다. 오랜 시간동안 그는 성장해 왔던 것 같다. 젊은 나이에 미국 대통령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 했으며, 인생의 밑바닥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는 우리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서민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거만한 정치인들과는 달랐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가 이 자서전에서처럼 따뜻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것과,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세계 여러 나라들에 오바마가 따뜻함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즉, 그가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사려 깊은 ‘사람’이지, 그러한 '대통령'이 될 거라는 환상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분명 더 현명하고, 합리적인 정책들이 나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이들에게 따뜻하게 전해질지는 모르겠다. 원래 정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권력을 합리적으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만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오바마의 인생보다는, 오히려 흑인이 미국 사회에서 가지는 깊은 고민에 대해 알 게 됐다. 그 개인의 자서전이라기보다는 흑인 모두의 고민을 서술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점이 이 책에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미국 사회에 대해, 그리고 흑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이 많은 흑인들에게 희망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흑인뿐 아니라 그의 그러한 경험은 황인들에게도, 다른 많은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희망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토록 많은 기대 속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 개인의 모습을 느꼈던 부분은 그가 이복형제들과 만남을 가졌던 장면이다. 누이와 형은 오바마 아버지의 일부이며, 또 그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마치 S사의 ‘인터뷰’라는 프로그램을 연상케 했다.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기회를 가진다면 분명 내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했다. 특히 케냐에서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들은 극적이다. 굉장히 많은 가족들. 그리고 길고 긴 가족사. 그 가족사 안에 있는 오바마 자신. 그가 아버지의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생각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과정들이 좋았다.
결국 오바마의 인종에 대한 고민은 새로운 지식(?)을 얻게 해 줬고, 이 책에 나온 그의 가족에 대한 생각들은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것이다.
자서전을 바라보는 데에는 실용서로서 바라보는 것이 있고, 문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문학적으로 별로라는 의견.
자서전은 편집된 작품이다. 그래서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
오레오. 흑인이지만 어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백인인 오바마의 정체성.
오바마가 크게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의견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